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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서울남부지방법원 변론기일에 출석하다

by 평정러 202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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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지방법원의 변론기일이라 출석하러 간다. A씨는 아침부터 추가할 자료들을 정리하고, 서면에 대한 진술을 준비했다. 그는 소송 사건의 피고이다.

 

1. 2004 2월 △△△ 에XXXX시OO쇼핑몰 10층 시OO에 1구좌 3천만 원에 투자했다. 2005년 시OO를 개관하였으나, 2007년 폐점하였다. 연리 11.38%의 확정 운영 수익금은 한 푼도 배당받지 못했고, 십수 년간 3천만 원의 기회비용까지 잃었다.

 

2. 매년 재산세를 납부하던 중 작년 2020 11월에 A씨를 포함한 구분 소유주 18명은 미납된 관리비 청구에 대한 소장을 받았다.

 

3. 2017 6월부터 미납액이 책정되어 소송 당시 약 197,710원이었던 것이 12월 현재 361,070원에 이르며, 패소한다면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4. A씨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관리비 납부에 관한 내용증명도 납부고지서도 수령한 적이 없음과 폐점한 상태이므로 수익자 부담 원칙,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요지였다.

 

5. 답변서를 송부한 후 1년 만에 2021 12월 변론기일에 출석하라는 법원의 통지서를 받았다.

 

6. 문제는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 관리비를 납부하지 않고 있고, 고지서에 명기된 관리비에는 연체료가 계속 붙어 가고 있어 심적인 부담이 컸다. 별도로 법적 강제 조치와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협박성 안내문을 2회 받았다.

 

7. 인터넷을 통해 관리비 채권 소멸 시효가 3년이며, 소장을 제출하면 그날부터 다시 10년으로 연장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 법적 조치를 하지 않으면 원고인 관리인단이 손해배상을 해야 하므로 소송까지 불사한다는 것이다.

 

8. 판례를 찾아보니 집합건물인 경우는 건물의 유지를 위해 공용 부분에 대한 관리비를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최초 답변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9. 어차피 관리비를 내야 한다면 최소화하는 방법에 집중해야 했다. (1) 피고가 관리비납부 관련 내용증명과 관리비 납부고지서를 받지 못했다. (2) 관리비의 납부지로용지(고지서)의 수령도 2021년 올해 5월부터였다. (3) 소송 중이라 판결이 날 때까지 잘못 책정된 관리비를 납부할 수 없었다.

 

10. 고지서에는 목적물의 위치와 공용 면적이 잘못 책정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로 인해 관리비가 과다 청구되었다는 것을 일일이 계산하여 정오표로 정리하였다.

 

11. 가장 좋은 결론은 합의를 통한 것이다. 올해 5월부터 공용 면적 대비 관리비를 정정하여 책정하며, 소송 중이므로 연체료는 부과하지 않는다. 그 이전의 미납 관리비는 원고 측(관리인단)의 우편물(내용증명, 고지서) 송부 오류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소송비용은 관리인단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피고 측은 공용 면적에 대한 관리비를 매달 납부하도록 한다’라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짓는 것이다.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니 현재 시OO층에 대한 매매 입질이 있고, 1구좌에 500만 원을 제안하는 매수자가 있는 모양이다. A씨 입장은 500만 원이 아니라 거저라도 양도하고 싶다. 20년 가까이 수익 한 푼 없고, 재산세를 내야 하고 이제는 소송까지 걸려 관리비까지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이 문제를 자식에게까지 대물림해야 할 판이니 A씨 선에서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싶다.

 

그런데 다른 구분 소유주의 의견은 달랐다. △△라는 요지에 3천만원에 분양받았는데, 500만원에 넘기라고 하는 것은 애초에 계획된 분양 사기라는 것이다. 하긴 A씨만 해도 무료로 양도해 버리고 싶으니, A씨 같은 사람들이 분명히 더 있을 것이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인플레까지 감안하면 분양 원가의 10%도 안 되는 금액으로 상가 두 개 층을 통째로 매수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누군지 원대한 계획에 통찰력에 인내심 또한 대단해야 한다. 역시 사기는 아무나 치는 것이 아니다!

 

603번 버스가 양천구에 있는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정차했다. 맞은편에 커다란 흰색 건물이 눈에 띈다. 본관 뒤 별관 건물로 들어가 가방 검사와 체온 검사 후 몸수색까지 하는 문을 통과했다. 2층의 2XX호실 앞의 대기석에는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2 30분으로 예정되었던 이 사건은 지연되고 있었다. 법정 안을 들여다보니 다른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었고, 정면 단상에 판사 한 명과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피고와 원고 등이 고성으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전자 게시판에 A씨 사건이 진행 중으로 바뀌어 있었다. 황급히 법정 안에 들어가보니 A씨 사건이 아니었다.

 

사무원에게 변론기일 출석 통지서를 보여주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앞쪽 단상에 갔다 오더니 노란 포스트잇 메모지를 건네주었다. 또 다른 피고 측에서 준비가 덜 되었다고 변론기일이 2 XX 14:10으로 속행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속행은 연기되었음을 의미한다. 추가 서면자료들은 본관 민원실에 가서 제출하라고 하였다.

원고 측이 아니라 같은 피고 측으로 인해 속행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구분 소유주들끼리 전화번호를 모르니 연락은커녕 너무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공동 대응은 생각조차 해볼 수가 없었다. 소송에 대한 답변서와 변론 준비 모두 A씨 혼자 한 것이다. 그런데 A씨도 모르는 피고 측에서 속행 조치를 취했다고 하니, 분명 유리한 증거를 만들어 올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롭게 혼자 싸우다가 적극적으로 함께 싸워주는 동지가 생긴 것 같아 A씨는 마음이 든든해졌다. 반면에 드라마에서나 보던 법정 변론을 직관하겠다고 따라온 일행은 왠지 허탈한 표정이다.

 

2003년 10월 '유동 인구 하루 80만명 최상의 상권, △△△역 에XXXX시OO 분양'이라고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대문짝만 하게 광고가 났다. 시공사는 SXX 지배주주 XX, 자금관리신탁사는 XX토지신탁, 시행사는 (주) 에XX종합건설이었다. 영등포 최고 최초로 10 개관 멀티플렉스 시OO이며, 평생 무료회원증 발급, 명도 상속 증여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A씨의 투자에 대한 확신은 광고를 곱씹어 읽어 볼수록 극대화되었다. 급기야 △△△의 분양사무실로 찾아갔고, 덜컥 100만원을 걸고 신청을 했다. 실제로 돈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몇 달 동안 4회에 걸쳐 중도금과 잔금을 치렀다. 부가세까지 합쳐 31,497,000원이었고, 등기와 취득세까지 하면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월급 받아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그렇게 40대 초반 생애 처음 투자라는 것을 해보았다. 분양사무실 직원들이 어찌나 설명을 잘하던지 1구좌만 투자하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돈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돌이켜보면 그 덕분에 손해도 덜 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구분투자, 구좌투자, 구획투자, 기획투자.. 이런 단어는 듣기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었다. 투자 사다리를 타서 경제적으로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주머니는 열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방송에서 김종민이라는 연예인이 투자사기를 많이 당했다는 고백을 했다. 다른 출연진이 옆에 있다가 그러면 정말 좋은 투자 거리를 소개해주겠다고 하니까, 김종민은 바로 '얼마 입금하면 되냐?' 고 반문했다. 사업 내용을 확인하기보다는 돈을 먼저 입금시키려고 하는 것을 보고 엄청 웃었지만 그야말로 A씨로서는 웃픔이었다. 어찌하다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선한 의도로 한 것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더라."

 

나쁜 짓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산다고 자부하던 A씨는 법원까지 들락거리게 되었으니 심신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래도 A씨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니 권토중래를 위해 당분간 휴지기를 가지기로 했다. 그의 모토는 '문제를 끼고 살며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정면승부를 통해 깨지더라도 해결하는 쪽을 택하자!'이다. 그는 조금만 더 인내하고 용기를 내자고 스스로 파이팅을 힘차게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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