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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의 전쟁

불행화와 우울증은 치매에 치명적이라는데

by 평정러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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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넘은 일인가~~ 매우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인상적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미국의 가난한 슬럼가 아이들에게 쿼터제로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주고, 입학 후 학업성취능력에 대한 연구 결과에 관한 것이다.

 

그 학생들은 특별히 인지기능이 떨어지지 않는데도 입학 후 학업 성취율이 낮았다고 한다. 똑같이 지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부유한 학생들과 비교해도 그렇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생존의 불안감, 가난함이 뇌를 비활성화시키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공부하는 뇌, 기억력의 뇌, 즉 뇌의 '해마'는 감정을 주관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분이 좋으면 해마가 활성화되고, 기억력도 활성화되어 학습이 수월하다. 가난함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어, 불안함을 야기하고, 걱정이 많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생존의 뇌인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기억력의 뇌인 '해마'가 활성화되지 않으니 공부가 될 턱이 없다. 

 

< 아마도 뇌의 상태, 뇌의 시냅스 상태가 이렇지 않을까 >

 

오래된 해묵은 기사, 어쩌면 내 기억 속에 조작되었을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어제 모친과 가족 번개팅이 있었다. 모친 포함 5명이 모였다. 모친이 좋아하는 육개장을 먹은 것 까지는 매우 좋았다. 

 

그런데 식사 후 모친은 수염을 기르고 있는 특정 구성원에게 필이 꽂혔는지 '왜 수염을 기르냐'라는 것이다. 우리는 본인이 좋아서 기르는 거고, 남자들은 머리도 삭발해보고, 수염도 길러보고, 머리도 묶어보고 그런 것이 여자들처럼 기분 전환이 되는 모양이더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데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주 못마땅하게 꼬꾸장하게 바라보는데, 이미 얼굴에는 웃음기 없는 싸늘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이 좋은 분위기에 왜 하필이면 혼자만 부정적인 사건에 사로잡힌 것일까?

 

가족들은 모친을 데리고 시장으로 갔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북적여 활기가 가득했다. 뇌 인지기능개선제의 부작용 중의 하나가 식욕부진이라고 해서 맛있다고 소문난 반찬 가게에 들렀다.

 

다음은 우리가 모친에게 사 준 반찬과 음식 쇼핑 목록들이다. 

 

고추장 불고기 2근, 떡갈비 6개들이 세트, 삼색 나물 반찬, 멸치 고추장 볶음, 메추리알 조림, 마늘 무침, 녹두빈대떡, 동그랑땡, 고추전, 생선전, 깻잎전, 만두 4종류, 찐빵 등이다. 

 

그 외에도 모친은 며느리에게 썬캡 모자를 하나 얻어 썼다. 아주 수지맞은 것이다. 

 

돈 잘버는 동생 내외가 모두 계산을 했다. 두 내외는 정기적으로 모친의 생활용품들, 예를 들면 두루마리 휴지, 곽휴지, 생수, 쌀 등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넣어 준다. 관리비도 내준다.

 

나에게도 떡갈비, 만두, 찐빵, 전 등을 챙겨 준다. 옆에 살면서 모친을 자주 챙겨 주어 고맙다고 한 마디 해 주는데, 당연한 내 책무임에도 고마웠다.

 

우리는 모친 집으로 가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먹거리들을 반찬통에 옮겨 담아, 모친의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한 숨 돌리고, 오손도손 모여 앉아 갓 쪄내 따뜻한 찐빵과 만두를 품평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친이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이 옥탑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옥탑방과 맨 위층 집은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빌라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사람이 '옥탑방에 이사 온 분이세요?'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깥에 나가서 외관을 살펴보니 다른 집과 다르게 벽이 아니라 창인가 뭐신가로 되어 있더라고 아주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말을 꾸려 나갔다.

 

나는 왜 그 말을 하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그런데 동생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 말의 의도를 알게 되었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동생은 모친에게 항의성 발언을 했다.

 

"엄마, 제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

"내가 무슨 이상한 말을 했다는 거야?"

"아까 며느리에게 '너희들이 나를 옥탑방에 외롭게 가두어 놓았다'라고 원망하셨다면서요?"

"내가 언제 그랬어?" 하며 신경질을 냈다. 

 

나도 이대로 두면 기정 사실화하니까, 얼른 교정해야겠다고 거들었다.

"엄마가 이 집 좋다고 직접 선택하고 계약한 건데, 누가 엄마를 이 집에 가두었다는 거죠?"

그리고 이어서

"이 집은 이 빌라에서 제일 공시지가가 비싼 집이고, 옥탑방이 아니라 복층 집이라고 하는 거예요!"

"옥탑방이나 복층 집이나 맨 꼭대기 집이니 똑같은 말이지! 그리고 내가 계약한 집은 1층이었다고!"

"엄마, 이 빌라는 필로티 구조라 1층이 주차장이고, 1층에는 집이 없어요."

"아니 그때는 분명 1층이었다니까."

"우리는 망원동에 딱 한 집만 구경했고, 엄마는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좋다고 다른 집 볼 것도 없다며 바로 계약하자고 했잖아요."

"아니야, 여러 집을 봤고, 분명히 1층이었어!"

 

모친은 오로지 '자신을 자식들이 뒷방에 가두어 놓고, 외롭게 방치해 두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모친의 이 끊임없는 '불행화와 불쌍한 역할화'에 진저리가 났다.

 

당신을 보러 온 자식들을 앞에 두고 할 말인가? '이렇게 모이니 너무 좋다' 뭐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가? 자식들이 화창한 봄날에 몰려와서 밥도 같이 먹고, 시장도 보고, 여유롭게 담소도 나누고,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시골에 있을 때는 1년에 4~5번 봐도 많이 보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4~5번 누군가 방문하고 놀아준다. 외로울 틈이 없는데 옥탑방이라는 불쌍한 단어를 설정해 놓고 외로움과 불쌍함을 쥐어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궁휼화하기'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모친은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을 매번 선택한다. 그것으로 분명 뭔가 득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학습되고,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고, '해마'를 비활성화시키고, 기억력이 감퇴되고, 결국 알츠하이머병에 이른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것을 생각하고, 스트레스가 될만한 말은 하지도 말자고 그렇게 반복하였건만, 이미 패턴화 되어 있는 성격으로의 요요현상이 대단하였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모친의 알츠하이머병은 계속 진행될 수밖에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혀하지 않아도 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엄마는 정말 불행을 만드는 능력이 대단해. 같이 있으면 나도 힘들어져 이젠 가야겠다."라고 매몰차게 말하고 일어섰다. 다행히 동생은 좀 더 있다가 나올 모양이다. 나가는 나를 모친 역시 삐져서 쳐다보지도 않고, 배웅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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