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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의 전쟁

치매 늦추기 4 - 새로운 문물에 노출시켜라

by 평정러 2022.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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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과 오늘은 올리브영에 갔다. 알아 듣든 못 알아 듣든 올세권에 대해 설명하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매장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한 번 들어가 보자고 하니 겁을 낸다. 구경만 해도 된다고 모시고 들어갔다. 죽 둘러 보더니 '화장품 값이 싸다!라고 하며, 염색약도 파는 걸 보고 반가워하며 좋아했다. 

 

쿠숀 코너에 가서 시제품을 열고 얼굴에 발라드렸다. 단박에 얼굴이 뽀얘지는 것을 보고 신기해 했다. 다양한 종류를 직접 열어보고 발라보도록 권했다. 모친은 얼굴에 함박 웃음을 띠며, '야야! 이것저것 안 바르고 하나만 발라도 되니 너무  편하고 좋다.'를 연발하였다. 매장을 나오며 신기한 구경을 했다며, 매장 바깥에서 간판을 유심히 보는 것이다. 또 하나의 랜드마크를 설정하는 것이리라.

 

버스카드를 사용하도록 해보았다. 지금까지는 내 카드로 '두 사람요~'하면서 대신 결제를 했다. 마침 지갑에 농협 카드가 있어서 핸드폰 지갑에 끼워 넣었다. 매우 불안해 하는 모친을 앞세워 핸드폰을 버스 단말기에 접촉시켜 무사히 승하차를 했다. 지하철 무료 카드는 왜 버스에 사용하면 안되냐고 반복 질문에 그때마다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다른 사람들도 핸드폰을 단말기에 대고 승하차를 하는 것을 눈여겨 보도록 했다. 지갑을 뚫고 단말기가 교통 카드를 리딩한다는 것에 모친은 정말 신기해 했다. 

 

일단 밖에 함께 나오면 점심도 다양한 곳에서 다양하게 잡숫도록 한다. 냉면, 불고기, 비빔국수, 돈까스, 비빔밥 등의 시그니처 메뉴를 파는 식당으로 간다. 양이 많아 다 못 먹고 남기고 가야 하는 것을 싫어 해서, 꼭 타파통 같은 것을 갖고 가서 먼저 덜어 놓는다. 그러면 되게 좋아 하며 마음이 푸근해져서 싹싹 긁어가며 다 드신다. 

 

산책 코스도 몇 군데를 정해 놓고 돌린다. 한강공원, 경의선 숲길, 체육공원, 게이트볼장, 경로당, 시장, 놀이터 등의 길을 겹치지 않게 분배해서 반복해서 다니도록 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 길이 그 길이고, 그 건물이 그 건물같다고 하더니 지금은 건물의 디테일을 말하며 '우리 여기 3~4번 온 적이 있지?'라고 한다.

 

오늘은 또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모친은 혼자 아침과 저녁 2회 외출을 하는 모양이다. 전봇대나 길 바닥에 표시를 해 놓고 길을 찾는다고 한다. 몇 번 했더니 지금은 표시를 안보고도 다닌다고 한다. 누구나 다 사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카드 결제를 시켜 보았다. 모친은 정형외과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해 물리 치료를 받는다. 오늘은 내 카드를 주며 결제를 모친이 직접 하도록 했다. 얼떨결에 모친은 창구에 가서 카드로 결제하고, 처방전과 물리치료 접수증을 받아왔다. 돈을 안 내도 되는 것에 신기해 했다. 

 

다음에는 약국에 가서 처방전을 직접 제출하게 했다. 기다리는 동안 고객용 자동 안마기가 있어서 어깨와 등쪽을 해드렸더니 꺅꺅 거리며 웃으며 시원하다고 좋아했다. 약사가 모친의 이름을 호명했다. 나는 또 나의 카드를 쥐어주었다. 모친은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결제를 하고, 약을 받아들었다. 이번 약은 매일 먹지 않고, 아플 때만 먹도록 처방을 받았다. 약사에게 약 봉투 겉에 '아플 때만 먹는 약, 하루 1봉지, 식사 후'라고 적어 달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약을 보관하며 매일 모친의 약을 챙겨 드렸다. 오늘부터는 약 봉지를 그대로 모친에게 드렸다. '아플 때만 먹는 약이니까, 엄마가 알아서 드세요. 하루에 하나만 드셔야 해요. 안 아프면 안 먹어도 돼요.' 하고 건넸더니, 별 저항 없이 선선하게 '알았다.'하며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모친에게 또 하나의 과제를 드린 것이다.  

 

어제 동생댁이 모친에게 들렀더니 혼자 마트에 가서 장을 본 것 같다고 한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불고기, 두부, 가지 등의 반찬을 해 놓았고, 고구마도 삶아 드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트를 찾아가서, 쇼핑을 하고, 돈 계산도 하고, 비번도 제대로 누르고 무사 귀가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반찬을 했다는 것은 인덕션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것 아닌가? 모친은 빠른 속도로 치매가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치매에서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끈질긴 반복 학습, 햇빛 아래 느긋한 산책과 걷기 운동, 하루에 한 번은 누군가 자신을 방문한다는 안도감, 랜드 마크를 만들고 혼자 외출을 시도한 본인의 의지, 세입자와 집관리에 대한 또 돈에 대한 걱정거리 제거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이룬 쾌거가 아닐까 한다.

 

동생댁이 제안했다. 그동안 우리가 반찬을 해드렸는데, 이제는 당신이 직접 장을 보고 반찬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밖에도 나가고 사람도 만나고 머리를 쓸 것 아니냐'라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모친에게 시골에서는 일상이던 것이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낯선 것이다.

 

'익숙한 시골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울의 문명을 몸소 체험하며 살아나가는 것'이야 말로 어쩌면 수동적인 약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치료제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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