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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의 전쟁

치매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2 - 이기적이고 고약해져도

by 평정러 2022.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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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증상자와 함께 있을 때 그의 부정적인 언어 또는 비언어적 표현들도 견디기 힘든 것 중의 하나였다. 신세 한탄, 징징거림, 타인 비방, 의심, 남탓, 고약함, 사악함 등이 입만 열면 쏟아져 나왔다. 말을 시키는 것,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꺼려질 지경이었다. 그에게 입력된 것들은 출력될 때 모두 비틀어지고, 일그러져서 튀어나왔다. 아무튼 생각나는대로 일단 정리해 보기로 한다. 

 

1. 직접적인 부정적인 말, 자책, 과거지향형 신세한탄

 

- 5분마다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쉰다.

- 혼잣말로 중얼중얼 '에이씨...' 욕 비슷한 것을 한다.

- '에이, 복도 지지리도 없지.'

- '그 좋은 집 팔고,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 '돈이 매달 300만원이나 나오는 집을 팔다니, 이제 돈 들어 올 데도 없고 어떻게 사나.'

- '내가 죄를 받아 시골집을 팔고 서울에 왔네.'

- '날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잘 살았다고 존경도 많이 받았는데, 이제 그 좋은 사람들과 다 헤어졌네.'

- '병풍, 포목, 김장 다라, 이불, 재봉틀, 커피잔 10개 ... 그거 다 두고 왔네. 가지러 가야 돼. 어이구 아까워.'

 

끊임 없이 되풀이 되는 문구들이다. 처음에는 위로하고, 서운해 할 필요 없다고, 조목조목 이해시키고, 다독였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아무 데서나 큰 한숨을 쉬고, 불평하고, 신세타령이 끊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치매 증상도 케어하기 힘든 데, 부정적인 표현들까지 직통으로 맞고 있으면. 심장에 표창이 날아드는 것 같다. 아무리 강철 멘탈이라도 헤어날 수 없이 그 분위기에 휘둘려 우울해진다. 

 

그래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런 부정적인 표현의 표창이 날아 오면, 바로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 잊혀질 때 잊혀진다해도...흥얼 흥얼~~', 엇 또 표창이 날아 오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흥얼흥얼~~', 그런데 참 묘하게도 상처받은 심장에 덮어쓰기가 되는 것 같다.

 

2. 간접적이고 교묘한 부정적인 말, 타인 비방, 남탓

 

- 밥을 차려 주면 '내가 입맛이 없다. 먹기 싫은데 그냥 살려고 먹는다.' -> 그런데 나보다 더 많이 깨끗하게 클리어 한다.

 

- '어이구, 저런 일하며... 먹고 사느라 힘들겠다.' -> 김이 가득 서린 매장에서 만두를 파는 성실한 부부를 보고 일갈한다.

 

- '갑은 참 이쁘다. 손주들 중에 갑이 제일 낫다.' -> 사람을 칭찬할 때 다른 사람을 비교하고 폄하한다. 

 

- '자식은 아프면 부모한테 불효하는 거다.' -> 이미 아픈 자식은 갑자기 불효자가 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불효자 낙인까지 찍힌다.

 

- 산책을 가자고 하면 '가기 싫은데 성의를 봐서 할 수 없이 나간다.' -> 밖에 나가면 강아지(?)처럼 좋아 한다. 

 

- '사는 게 신이 나지 않는다.' -> 내가 모친의 기대에 못 미쳐 허접하게 살아서 그런가 하는 자책감이 든다.

 

- '조카들이 인정이 많고, 나를 좋아해서 자기네 곁에서 여생을 보내라고 한다.' -> 인정머리 없는 자식이 된다. 

 

3. 치매 증상자의 고약함 무엇이 원인인가

 

나는 옛날부터 이상하게도 모친과 전화를하고나면 기분이 상했다. 모친이 나를 걱정하고 애정애정하는데도 그랬다. 이제 그 이유가 모친의 화법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전화를 끊을 때 '건강하게 잘 지내라.' 이렇게 말하면 될 것을, '네가 건강하지 않으면 ~~~하게 되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라고 한다. 나를 걱정하는데 왠지 기분이 안 좋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뭔가 기본적으로 나쁜 것을 상정하는 '네거티브한 동기 부여' 때문이다. '포지티브한 동기 부여'는 좋아서 하는 것이다. 나는 자발적이고 성숙한 어른이 되도록 훈육받기보다, 모친의 대리 만족의 수단으로 키워졌던 것은 아닐까. 전자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널 혼내겠다, 네 인생은 잘못될 것이다.'의 변형된 버전이기 때문이다. 나의 내면의 아이는 모친이 자식을 지배하고 통제하던 그 옛날 겁박의 수법이 다른 버전으로 여전히 가해지고 있음을 알아챘던 것이다!

 

모친은 우리를 키우면서 그 화법이 잘 통한다는 것을 오랜기간 체험 및 학습되었고, 어느덧 습관화에 이른 것이다. 습관은 성격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나마 대뇌피질의 전전두엽의 이성적인 통제 능력으로 필터링되었던, 부정적인 언어와 비언어적 표현은, 치매로 인해 완전히 고삐가 풀려 기승을 부릴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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